잃어버린 유품을 찾아서
<<고객감동 최우수사례>>
이 글을 읽으면서 진정한 감동서비스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내용이라 올려 보았습니다.
사정상 지역과 주인공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2006. 4월 어느 날 유난스레 고객이 많은 금요일 오후 정신없이 전화 응대를 하고 있는 내 시야에 민원실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한참을 서성인 듯한 30대 후반의 남자고객이 들어와 창구로 나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인사를 건넸다.
고객은 주춤주춤 나에게 다가오면서 얘기 좀 할 수 있느냐고 하기에 긴 이야기면 잠깐 들어오시라고 하여 상담을 시작했다.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고객의 사연인즉슨, 8개월 전 아버님이 독일로 산악여행을 떠나셨는데 불행히도 등반 중 사고로 사망하셨다고 했다. 식구들이 독일 현지에서 대충 장례를 치르고 아버님의 유품(마지막 입으셨던 옷과 신발 등)을 챙겨서 비행기를 타려고 했는데 황망 중에 유품을 독일택시에 놓고 내려버린 것이다.
아버님의 시신은 비행기로 옮겨올 수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시는 산에 묻어드리고 유품을 시신 삼아 한국에서 다시 가족장을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유품을 잃어 버렸으니... 가족들의 허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 독일에서 머물렀던 호텔로부터 전화가 왔다. 호텔 앞에서 고객을 태운 어느 택시기사가 고객분이 두고 내린 물건이라며, 택시에서 본 고객들의 침울한 표정으로 봐서는 중요한 물건 같다고 하면서 주고 가기에 고객관리부에서 여행사주소를 확인하여 우편으로 발송했다는 것이다.
가족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독일에서 보냈다는 유품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우편물을 찾기 위한 고객님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집이 00이라 00우체국에 문의하고, 여행사 주소가 00구라 00우체국에 문의하고, 국제우체국, 통관국인 영동우체국 등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의를 했지만 등기번호를 모르면 우편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될 뿐이었고
등기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독일 호텔에 전화해보니 그때 우편물을 발송해준 고마운 직원은 퇴사를 해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체국에 또 전화해서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똑같은 답변만 계속될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어머님의 눈물은 고객님의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 아프게 했다고 한다. 아버님 기제사는 하루 이틀 다가오는데 유품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고...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6개월이었고 이제는 00구 소재 여행사마저 폐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6개월 동안 같이 마음 아파한 여행사에 감사인사를 전하고 여행사 주소라도 확인해 두고자 여행사에 들렀다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우체국 문을 들어섰지만 또다시 같은 답변을 들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라 서성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본인은 괜찮은데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어머님에게 불효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는 말로 마무리하시는 고객님의 두 눈에는 어느새 구슬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내 눈도 상기되어 있음을 느끼며 나는 고객에게 우체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안내했다.
전화답변처럼 국제우편물은 국내와 달라서 주소와 수취인명을 전산처리 하지
않기 때문에 등기번호를 모르면 확인이 불가하다는 사실
(나 또한 전화 문의 시 똑같은 답변을 한다.)
외국인들은 등기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우편물을 보통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 등기로 왔다는 보장도 할 수 없는 상황
비록 국내에서 가등기로 접수될 수는 있지만 물건의 사이즈가 작다면 그것도
기대하기 어려움
일반우편물은 우편함에 투함하는 것으로 우체국의 임무는 끝나므로 담당집배원
이 기억하지 못하면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사실
그러나 이대로 포기에는 고객님의 사연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국제우체국 도착계에 중계되는 우편물에 주소가 기록되는지 확인을 요청했으나 확인 불가능이라는 답변을 받았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 국제소포 담당과 통상 배달 담당에게 확인을 했으나 같은 결과였다.
몸으로 움직여 볼 수 있는 것은 국제소포실과 소포실을 샅샅이 뒤지는 일이었다. 끝없는 미로처럼 장기간 길어질 것 같아 제가 최선을 다해 찾아 볼 테니 우선 연락처와 여행사 주소가 있는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남기고 가시라고 하니 아니라고, 하염없는 하소연 들어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하며 돌아서는 고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참으로 찹찹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고객님의 눈물 어린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1년을 넘긴 민원팀장 경험을 바탕으로 가지가지 생각에 젖어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발송인이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수취인 주소를 잘못 기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발송인이 본인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배달 불능 시 반송이 아니라 포기를 체크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갑자기 가슴이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반송포기 배달 불능 우편물은 배달국인 우리 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다음날은 토요일, 근무일이 아니지만 아침밥을 먹자마자 사무실로 향했다. 다행히 운용팀장님이 당직이라 졸라서 운용실에 보관 중인 배달 불능장부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중 그 즈음에 배달 불능으로 올라온 독일에서 온 우편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느꼈다. 이거다.
아싸! 하며 어린아이처럼 하늘로 뛰어올랐다. 잃어버린 내 소중한 것을 찾은 것처럼!!!
그러나 불행히도 우편물은 3개월 보관기간이 지난 물품으로 회계팀으로 올라간 뒤였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이 지나서 월요일이 되어야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기간이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지... (아이들이 소풍날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고객님께는 연락하지 않았다. 100% 확인된 상황이 아니어서 어설프게 전화해서 희망을 품었다가 아니면 더 큰 실의에 빠질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출근하자마자 회계팀으로 뛰어올라갔다. 물품주임님의 놀라는 표정. 다짜고짜 주임님 팔목을 끌고 물품보관 창고로 갔다. 실물을 모르기 때문에 목록을 보고 우편물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는 과정에서 낯익은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의 느낌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우편물에서 광채가 나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미쳤다고 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나를 찾아 달라는 아버님의 몸짓처럼 그렇게 우편물은 내 손에 들어왔다.
고객님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니 날아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몇 개월간의 먼지에 싸여 다소곳이 놓여있는 유품을 보고 차마 덥석 만지지도 못하고 하염없는 눈물로 바라만 보시더니 나를 한번 바라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시지만 그 마음을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민원실 전 직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랜 침묵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고객님은 “이제 불효자식은 면하겠네요.”라고 한마디 했고 직원들은 손뼉을 쳤다.
고객도 웃고 나도 웃고. 우리는 그렇게 또 한동안 웃었다.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수십 번을 인사하는 고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참 예뻤다.